책소개
2년 만에 선보이는 새 장편 『태연한 인생』은 그간 집적된 은희경 소설의 성취들이 고스란히 담긴 은희경 소설의 빛나는 정수를 보여준다. 사랑과 상실과 고독에 대한 빛나는 문장들이 다시 한번 우리를 은희경 소설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태연한 인생』을 이끌어가는 것은 두 사람의...
태연하다! 라는 말은 마땅히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할 상황에서 태도나 기색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예사롭다 (네이버). 는 말로 놀라거나 호들갑 떨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차분하게 상대방을 예의주시하는 것, 여자들의 숨은 속성이다. 우리도 삶을 살아가면서 태연하게 구는 때가 있다. 책 속의 남편처럼 바람둥이라면 남편의 행각보다도 가족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남편과 모르는 남에게 태연하게 구는 여자는 많았다. 텔레비전 드라마든 다큐 든 책 속의 주인공이든 많은 시대를 산 여자들의 바람피운 남편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그에 못지않게 태연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도 끝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소설 <태연한 인생>도 그랬다. 소설 속의 류 엄마도 엄마를 닮은 류도 태연했다. 태연한 여자는 강인해서 그녀들 앞에서 매혹을 노래하고 패턴을 노래했던 알량한 남편과 남자는 강인한 여자 앞에 온전히 서지 못하고 지상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눈앞에서 사랑을 놓치고 탄식하며 돌아섰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슴 한 편에 남아 기억을 꺼낼 수 있는 관계로의 재정립을 택한 것이다. 물론 요셉의 동의는 전혀 없는 일방적 결정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요셉은 아직도 류를 잊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제 둘은 연락을 나누지 않는다. 지독하게 이별하고 가까스로 남남이 됐고 서로에게서 분리를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서로를 떠올리면 흉터가 아파오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히 류가 의도한 관계로 정립된 것이라 생각된다. 아련하지만 서로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으며 열정적 사랑의 불안함속에서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이상적인 차선의 결과라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아주 오래전 어느 봄날 류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공중전화부스의 유리에 기댄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녀의 눈빛과 입술과 상기된 표정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순간 그녀의 얼굴로 웃음이 퍼져나갔을 때 봄 햇살이 비쳐든 듯 전화부스 안이 환해지면서 엄청난 볼티지의 전율이 아버지의 심장을 강타했다.
이 책의 처음 시작은 이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류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 열렬히 사랑했지만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부터 그 사랑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류의 아버지가 ‘이미지’로 표현된다면, 류의 어머니는 ‘패턴’으로 표현된다. 류의 아버지는 류의 어머니의 모습에 첫눈에 반했고 그 당시 애인이 있었던 류의 어머니를 쟁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마침내 사랑을 쟁취한 류의 아버지는 결혼 이후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자기 자신만의 단독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반면에 류의 어머니는 삶을 유지하기 위한 패턴대로 살아가는 서사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두 사람에 사랑에 대한 결과를 지켜본 류는 삶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