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연애'를 통해 1920년대 초반을 읽는다. 세계 개조의 목소리가 높던 시절 '연애'는 개조론의 대중적 변종이었고, 새로운 가치 '행복'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분명 1920년대 초반을 지배했는데도 한 번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현상, '연애'에 관한 순문학 텍스트 및 주변적이고 통속적인 양식까지를 두루 살펴본...
‘개조’의 시대, 가정의 개량
: 1920년부터 가정의 개량은 본격화 되었다. 당연시 되어 온 부권주의(남권주의)의 전근대적 가정을 탈피하여 모두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가정으로의 변화가 이뤄져왔다. 그리고 이 개량의 문제는 비단 가정에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사상적으로 ‘개조’가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다. 그 뒤로 1920년부터 한국에서는 각종 매체를 통해 개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구여성의 설움 – 시골 색시 탄식가
: 가사는 1900년대 개화 가사라는 변종을 만들어 내고 소멸되었다. 그 중에서 여인네들의 삶을 담은 규방 가사도 존재한다. 이 규방 가사에서 영남 지방의 <시골 색시 탄식가>는 특히 인기가 있었다.
우리에게 1900년대 초반은 일본제국주의에 주권을 빼앗겨 신음하던 암흑의 시대였다. 하지만 1900년대 초반은 어둠과 화려함이 공존한, 문화적인 충격의 시기였다. ‘연애’는 새로운 문화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연애’라는 단어가 언제 정확히 출현했는지를 짚어내기는 어려우나, 1912년 조중환의 번안작 『쌍옥루』에 “청년 남녀의 연애라고 하는 것은 극히 신성한 일”이라고 가르쳐주는 재봉 교사의 등장으로 미루어 이 시기를 전후하여 등장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1910년 중반까지는 ‘연애’는 물론이고 ‘사랑’도 흔히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었다.
신소설의 상당수가 결혼을 둘러싼 갈등을 소재로 하였고, 사랑이나 연애라는 단어가 쓰인 것도 외국 소설의 번안으로 등장한 개념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단어는 아직 사회 저변으로 확산된 것은 아니고, 삽화적인 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10년 3.1운동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총독부는 문화정치라는 노선을 취하여 우리나라에 새로운 문화지형을 싹트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