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냉철한 통찰력과 아름다운 문체로 주옥같은 작품들을 선보이며,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대표적 작가, 김훈의 첫 번째 소설집.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화장>과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언니의 폐경>을 비롯한 8명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의...
화장품 회사에 근무하는 오 상무는 뇌종양에 걸린 부인을 간병하면서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추은주라는 여성을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중년 남성이다. 2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병이 악화된 아내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자 화장을 하여 납골당에 안치하고 같은 날 추은주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난다. 모든 걸 털어버리고 오 상무는 다시 새 삶을 시작한다.
이 소설은 몸은 아내 곁에 있지만 마음은 직장 여직원 추은주에게 가 있는 주인공의 내면 세계의 흐름을 서술한 것이 주된 내용이지만 그 한 귀퉁이에서는 오 상무의 병든 아내가 살아생전 좋아했던 보리가 버려지듯 안락사를 당하는 모습이 나온다. 수의사의 말에 따르면 “좋은 종자”이며 건강한 진돗개인데.
김훈의 소설을 어른의 소설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는 소설 속 인물들의 나이가 사오십 대의 중년층인 이유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그 인물들이 가지는 허무주의적 성향에 근거한다. 한 문학평론가의 표현을 빌자면 김훈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견자의 허무’를 이야기하는데, 그 견자의 허무란 ‘성숙한 어른’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 상실, 혹은 죽음의 과정을 그저 서류를 결제하듯이 정리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그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늦가을과 초겨울이 알맞게 비벼진 계절의 새벽은 언제나 신비롭다. 자욱한 안개가 그렇고, 과일이 농익어 가는 향기가 그렇고, 벼 벤 논에서 풍기는 상큼한 풀냄새가 그렇다. 흔들리며 우는 억새와 여명에 비친 청무밭도 가을에 보면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정취 중의 하나다.
코카콜라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신년사에서 말하길, 남자의 인생은 일, 건강, 가족, 친구 그리고 나 자신이란 다섯 개의 유리공을 돌리는 광대와 같다고 했는데, 마흔이 넘고 보니 정말 그 말에 새록새록 공감이 간다. 일이란 공은 땅에 떨어뜨려도 다시 튀어 오르지만, 건강과 가족과 친구와 자신의 영혼은 유리공과 같아서 한번 땅에 떨어지면 회복이 어렵다는 것을 요즘 들어 체험으로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남자의 삶이란 무엇이고 우리가 살아있음의 희열을 느끼게 되는 순간은 어느 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