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류사의 가장 문제적인 장면에 해당하는 십자군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중세와 십자군의 역사,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게 될 것이며, 현재의 다양한 문화산업에서 변형되어 재생산되는 상상력의 원천으로서의 중세와 십자군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중세교회사 과제 2개가 모두 공교롭게 이슬람이라는 주제와 겹쳐졌다. 교수님의 강의 의도와 같이 중세교회사 내용 학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오늘날의 현실과 교회 안에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적용점을 고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제는 적절한 것 같다. 이슬람은 중세의 십자군 사건을 통해 부딪쳤고, 지금도 현존하고 있는 세력이며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선교의 대상이라는 걸 생각할 때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3권. 4장. 황제 프리드리히와 6차 십자군
십자군이야기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가장 멋진 평화의 사자로 재현한 사람은 프리드리히 황제이다. 그는 관대함과 정확한 현실감각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중근동과 독일에 평화를 유지했다. 어리석고 편협한 교황의 끝없는 방해와 ‘파문’속에서. 역사가는 비록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았지만 십자군 이야기에서 프리드리히는 이상적 군주이다. 하긴 무능한 루이를 성왕으로 만드는 역사가가 무슨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관대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는 십자군은 뒤로 미루면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사라센 거류지, 이교인 고대 로마법을 가르치는 나폴리대학, 민족종교를 초월한 의학대학 살레노르 의학교를 부흥시켜 교황의 미움을 샀다. 게다가 알 카밀과 물밑 협상을 시도했다. 알 카밀은 프리드리히에게 ‘십자군의 모든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다. 굳이 십자군이 출발할 필요도없었다. 그러나 교황의 추궁에 몰린 황제는 일단 출발 준비를 한다.
새롭게 선출된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프리드리히에게 곧 출발하지 않으면 엄중한 처벌을 내리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프리드리히는 지난해 250명의 병사를 보냈고 곧 4천의 영국병사와 시칠리아1백, 독일4백의 병사가 출발할 것이라고 답했다. 극비리에 선단도 준비중이었다. 1227년 십자군이 출발했다. 그러나 배안에서 역병이 돌아 오트란토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레고리우스 9세는 나폴리 부근에서 요양 중인 프리드리히를 파문해 버린다.
1228년 교항은 복종의 마음이 없다는 이유로 프리드리히를 재차 파문하고 성무금지 처분한다. 아울러 파문당한 자가 이끄는 군대는 십자군이 아니므로 그 행군을 방해하고 물자를 빼앗아도 된다고 못 박았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교항이 십자군을 방해하는 것이 모순으로 비쳐졌다.
중동의 상황도 변했다. 알 카밀은 시리아파의 반란을 소멸시키고 이집트와 통합에 성공하여 예루살렘을 반환할 마음이 없어졌다. 어쨌든 프리드리히는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