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짐멜은 돈, 여행, 유행, 모험, 성, 종교, 편지, 얼굴, 장신구, 식사, 손잡이 등과 같이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현상들을 철학의 대상으로 간주하여 분석하였다. 이 책에서는 그를 통해 모더니티의 새로운 풍경을 읽어낸 짐멜의 사상과 정신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서울가면 눈뜨고 코베인다.’ 언제 유래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되고 익숙한 구절이지만 지방 출신인 필자에게는 부모님과 온갖 매체에 노출되어 체화되었던 문장이다. 스무살 되던 해 대학교 입학을 위해 상경하고 나서 바라본 첫 지하철 풍경은 모두가 눈을 감고 있거나 지쳐있어 누구도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얕은 믿음을 갖게 했다. 그러나 저 문장의 진짜 의미를 한참 후에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대도시의 템포는 너무나도 빠르고 유입되는 정보와 자극은 임계치를 넘어선다. 나 아닌 타인 그 누구에게나 관심을 주지 않고 모든 자극에 침묵하는, 대중교통에서는 마치 기계장치의 절전모드처럼 웅크리게 된다. 이른바 ‘신경과민’의 사회. 20세기 초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100년도 더 전에 이러한 대도시인의 행태를 관찰하고 탐구했다.
개인 간 상호작용을 기반한 형식사회학의 창시자이자, 현대 사회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 (Georg Simmel, 1858~1918) 이후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책은 2018년을 사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해석함에 크게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이는 특히, 매우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라고 생각되는 ‘유행’에 대한 내용인 3장<유행의 심리학, 사회학적 연구>이 오늘날에도 적용되며, 그 논의를 확장시킬 수 있음에서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짐멜은 유행을 ‘사회적 균등화 경향과 개인적 차별화 경향 사이에 타협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삶의 형식’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인간 존재가 가지고 있는 양가적인 근본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모방하려는 특성과 돋보이려는 특성이 유행을 통해 동시에 만족될 수 있음을 말한다. 오늘날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나는 유행의 모습도 짐멜의 분석과 같은 원리를 공유한다.
꿈을 꾼다. 나는 이름 모를 개를 키운다. 그 개는 아주 날래고 변덕스러워서, 나는 그 아이가 이리저리 뛰어가는 난생 처음 보는 길을 정신없이 따라다닌다. 개는 견고하고 빛나는 금장 목걸이를 찼는데, 그것은 지나다니는 열 마리의 개들 중 아홉은 한 아주 보편화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아이가 오롯이 이 지구별 속 유일한 ‘나’ 만의 개라는 사실에 특수성과 특별함을 느낀다. 그러다 나는 문득, 지나치는 가게의 거울 속에서 폐허된 공터처럼 텅 빈 눈으로 멍하니 그를 쫓는 나를 발견한다. 순간 꿈에서 깬다. 나는 그제야 그 아이의 이름을 상기해낸다. 그 아이의 이름은 ‘유행’이며, 짐멜이 말하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 산재하는 공기와 같은 현상을 가시적으로 만들어낸 형상(形像)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그는 먼저 모방에 대한 얘기를 서두로 꺼낸다. 모방이란 유행의 심리학적 측면을 반영한 현상으로, 짐멜은 이를 ‘집단이 개인에게 행위 양식을 전수해주고 선택의 고통과 선택에 대한 개인적 책임감에서 해방시켜주면서 그 집단 내부에 개인의 존립을 가능하게 해주는 현상’이라 정의 내린다.
돈은 현대 사회에서 많은 것을 편하게 만들었다. 돈으로 대부분의 가치가 환산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많은 것들을 발전시키고 변화시켰다. 이러한 발전과 변화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사람들이 생존의 문제에서 벗어나 문화·예술적인 영역까지 눈을 돌릴 수 있게 만들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영화와 연극, 뮤지컬 등과 같은 공연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웹툰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문화·예술 작품을 창조해 내는 사람의 범위도 넓어졌다. 이처럼 돈이 사람들의 삶을 더 풍족하고 호화롭게 만들었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다. 하지만 돈이 이렇게 긍정적인 결과만 가지고 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