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8세기의 조선사회는 정치 ․ 사회적 정책의 측면에서 문벌, 지역, 이념을 뛰어넘어 국민과 사회를 통합하려던 시기다. ‘붕당정치’를 끝내고 ‘탕평정치’ 시대를 열겠다는 영 ․ 정조의 새로운 정치적 표방이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곧 크게 ‘하나’되는 탕평정치가 도달하려 한 마지막 귀결점은 모두 ‘같이’ 되는 ‘대동정치’ 였던 것이다. 조선사회는 붕당에서 탕평으로 탕평에서 대동으로 전진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것이 당시의 조선사회가 우리에게 남긴 긍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영 ․ 정조 시기 정치개혁과 문예부흥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보다 이데올로기였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적과 동지라는 편가르기에 이용되면서 언제나 탕평과 대동의 적이었다. 이른바 조선만이 유일한 순정 주자성리학의 나라, 마지막 남은 의리와 명분의 나라라는 자부심을 내건 조선 중화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이 이데올로기가 여타의 보편성과 창조성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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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책에 대하여 일반 사람들은 영 ․ 정조의 탕평책이 조선사회의 고질병인 당파싸움을 없앤 훌륭한 정책이고 따라서 두 군주는 정치를 잘한 현명한 임금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해서 잘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른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꼬집어 이 책을 서술했다는 점도 엿볼 수 있었다.
18세기 탕평정국에서 나타나는 새롭고 다양한 삶의 모습, 특히 정치적 삶의 모습을 추적하다 보면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보아도 손색없는 정치인 통합운동이 존재했고, 나아가서 그것이 한편으론 국민통합운동이기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정치사를 당파싸움의 역사라고 규정한 것은 일본 식민사학자들 부터였다. 그러나 그들의 말대로라면 조선사회가 500년간 유지된 것은 역사적으로는 기적 같은 우연일 뿐 사회통합 능력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