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서양 세력을 배척하던 때, 서양의 학문과 문명을 접하고 혁신유림이 된 이원영李源永! 일제강점기 절망의 시대에 민족독립을 위해 3.1 만세 시위에 앞장섰고, 장로교 목사가 되어 신사참배 강요를 온몸으로 항거하고 막아낸 산 순교자, 선비목사 이원영을 통해 세계 보편 기독교 속에서 한국적 기독교를 찾아간다.
이원영 목사님은 1886년 7월 3일에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원촌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퇴계이황 선생의 14대 손이며, 퇴계 학맥을 이어가는 집안의 교육 전통에 따라 네 살부터 약 10년이상 한문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간 동안 그는 유생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식과 덕목을 쌓았을 뿐만아니라 인품 또한 오랜기간 동안 선비로서 다져진 인물이다.
그는 독립운동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하였는데, 그 이유는 3⦁1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였다. 그는 법정 진술에서 자신이 3⦁1운동에 가담하게 된 배경과 동기를 밝혔다. 그는 법정 진술에서 인도주의, 곧 정의와 인도에 입각해서 조선 민족의 독립은 ‘천부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즉, 세계 모든 민족이 각기 정의를 바탕으로 사람됨의 길을 걷는 것은 하늘이 내린 권리이므로 자신이 민족 독립을 위해 나선 것은 ‘대한민족의 천만 분의 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만세를 부른 것은 ‘동양의 평화와 세계의 영구 평화를 기망’하는 일이라고 진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