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ㅇ 교수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이 있었다. “세상 어느곳에서도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데 중문학을 공부한다고 하고, 영어를 할 줄 모르는데 영문학을 전공한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만약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비웃을 것이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친짓이 신학에서는 통용되고 있다.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성경이 쓰여진 언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모르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공부하려 하지 않는다.” 이 말은 정말이지 강력했다.
과연 이 예를 듣고도 누가 원어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할 수 있을까? 또 과연 그 누가 이 예를 듣고난 이후에도 원어는 중요하지 않다며 손사래 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원어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특히 히브리어는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거의 처음 접하게 되는 언어형태를 가졌기 때문에 읽는 것도 어색할뿐더러 공부를 해나가면서 단어의 모양을 통해 파싱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이 언어를 정복해야겠다는 생각은 조금씩 접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원어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생들에게는 원어란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발달한 현대기술로 인해서 이러한 딜레마가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바이블 웍스라던지, 어코던스와 같은 성경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각 단어별로 변화하는 수많은 변형과 불규칙들을 다 외우고 있을 부담이 사라졌다.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가 대기만 하면 간 단어별로 분해가 이루어지고, 성경에 그 단에가 어떤 용례로 사용되었는지를 바로 알 수 있으며, 단어의 뜻조차도 바로 알 수 있다.
이와같이 오늘날에는 원어를 공부하는 부담이 예전에 비해 많이 덜어져서 히브리어·헬라어를 원어 성경으로 두고 강독을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각 변화형의 의미와 각각의 형태에 따른 뉘앙스를 파악하는데 더욱 중점을 두어 공부할 수도 있게 됬다. 이것은 과거에 비해 발달한 과학이 주는 큰 유익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