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돌 아래서 비스듬히 내 쪽을 향해 푸른 줄기가 뻗어왔다. 그 줄기는 순식간에 자라나 딱 내 가슴 언저리에서 멎었다. 그러더니 가볍게 흔들리는 줄기 끝에서 고개를 기울이고 있던 가늘고 긴 한 송이 꽃봉오리가 벙싯 꽃잎을 벌렸다. 새하얀 백합이 코끝에서 진한 향기를 풍겼다. 그곳으로 아주 높은 곳에서 톡하니...
꿈 열흘 밤이라고도 하고, 열흘 밤의 꿈이라고도 하는 이 소설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중에서도 백미라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일본문학을 잘 안다고 하는 나로서도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중 꿈 열흘 밤은 들어보지 못했다.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선 단편소설은 거의 출판되지 않아 찾아 읽기가 어렵다.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명암’ ‘마음’ 등 거의 모든 소설이 작가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기에 처음 들어본 이 단편소설이 궁금했다. 대부분이 그렇지만 짧은 단편소설이라고 해서 내용이 이해하기 쉬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장편 소설보다 설명이 부족하고 열린 결말의 형식이 많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쓰메 소세키의 ‘꿈 열흘 밤’이 그랬다. 심지어 주제마저도 꿈이라 몽환적인 탓에 그 해석이 확실하지 않았다. 열흘 밤 동안 꾼 꿈이 내용인 이 소설은 꿈이 이어질 리 없으니 열 가지 이야기가 모두 다르다. 읽고 나서도 한 동안은 그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열흘 밤 동안 꾼 꿈의 내용은 이렇다.
1. 나쓰메 소세키의 생애
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 에도[江戶]에서 태어난다. 그의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이다.1868년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다. 그는 근대화를 겪으며 성장했고, 영국 유학을 통해 서구 근대 문명을 전한다. 1884년에는 제일 고등중학교에 들어간다. 1890년에는 동경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한다. 이때부터 염세주의와 신경쇠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1893년 도쿄제국대학을 영문과를 졸업한다.
1900년 문부성의 관비 해외유학생에 선정되어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소세키는 이곳에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셰익스피어 연구자였던 크레이그에게 셰익스피어와 디킨스, 영시 등을 배우는 동시에 영국의 역사, 문학, 철학, 심리학, 미술 등을 홀로 공부한다. 신경쇠약이 문제가 되어 1903년 문부성으로부터 귀환 명령을 받고 귀국한다.
1905년 <호토토기스> 잡지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연재하면서 나쓰메 소세키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풀베개>(1906)를 쓴다. 1916년 12월 9일, 위궤양을 앓고 있던 소세키는 『명암』의 집필을 끝마치지 못하고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시신은 도쿄 제국대학 의학부에 기증되어 현재 뇌와 위가 그곳에 보관되어 있다. 그는 근대 일본의 소외된 지식인들이 처한 곤경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명료하고 설득력있는 문장으로 그려낸 소설가이다.
2. 작품의 특징과 영향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열흘 밤의 꿈』은 인간의 의식 깊은 곳에 존재하는 회한, 욕망, 절망 등의 절박한 감정을 '꿈'이라는 공간을 빌려 표현한 작품이다.
첫 번째 꿈에서는 여자가 죽은 뒤 100년 동안 무덤 앞에서 기다리는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영원성을 담아내고 있다. 둘째 밤 꿈을 통해서는 빠져나갈 출구를 찾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좌절감을, 셋째 밤 꿈에서는 어두운 과거의 기억이 되 살아날 때의 전율을 전달한다. 넷째 밤의 꿈에서는 수건을 뱀으로 만들어 보인다고 하면서 강으로 걸어들어가 물속에 잠겨버리는 노인의 좌절감이 소녀의 기대감과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