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는 추운 겨울밤 홑이불만 덮고 잠을 자다가 『논어』를 병풍 삼고 『한서漢書』를 물고기 비늘처럼 잇대어 덮고서야 겨우 얼어죽기를 면했다. 이런 가난 속에서 이덕무가 사랑한 것은 오직 책을 읽고 베껴 적는 일이었다. 그는 풍열로 눈병에 걸려 눈을 뜰 수 없는 중에도 힘들게 실눈을 뜨고서 책을 읽던...
강물에 비친 천 개의 달빛, 물안개가 피어나는 새벽녘의 호수, 그 호수에 비친 산 그림자, 하늘을 나는 독수리의 땅 그림자. 이렇듯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을 들뜨게 하고 아련한 추억 속에 잠기게 한다.
필자는 얼마 전에 정민의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을 읽었다. 이 책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서얼 출신 중의 한 명인 이덕무의 ‘청언소품(淸言小品)’을 모아 엮은 책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인 이덕무의 맑고 올곧은 삶을 엿볼 수 있는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을 읽으면서 필자는 이 책을 지은 한양대 정민 교수가 바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에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보면 주인공에 가려 저자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자세히 보면 이덕무를 더 돋보이게 하는 아름다운 후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번처럼 저자가 아름답게 생각된 적은 없었다. 만약 정민 교수가 이덕무로 변신하여 글을 쓰지 않았다면 필자가 어찌 이백년 전의 이덕무와 고담준론을 나누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