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텍스트로 철학하기『죽음아, 날 살려라』. 죽음을 다루고 있는 시, 영화, 소설 등의 텍스트를 읽고 토론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죽음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의미 있는 해답을 찾고자 한다. 생활 속에 묻혀 있는 철학적 요소를 밖으로 끄집어냄으로써 삶을 읽어내려 한다. ‘텍스트로 철학하기’...
첫 번째는 걸음마도 채 못 뗀 갓난아기일 적에 벌어진 일인데, 어머니가 급한 볼일이 생기셨지만 집안에 아무도 없어 어린 나를 업고 외출을 나갔다가 강도를 만났던 일이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기지를 발휘해 주민등록증만 빼앗긴 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울어대는 나를 업은 어린 어머니에 흉기를 들이대는 강도의 모습을 상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두 번째는 스무 살의 아르바이트 현장에서였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생각으로 했던 생애 첫 아르바이트는 빌딩 공사판. 창문이 아직 설치되지 않아 뻥 뚫린 베란다 앞에서 사다리를 올라 천장에 설치할 전등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중 략>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다는 것은 두 번이나 유서를 써 본 경험으로 봤을 때 확실하다. 다만, 내 자신의 생명을 아껴서 이 삶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잘 즐길 계획이기 때문에 옳지 않은 계기로 쓰게 된 것들은 절대 아니다.
한 번은 초등학생 시절 가봤던 절에서 쓰게 된 것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사상에 대해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간단하게 설명하고 짤막하게나마 유서를 써보게 했던 기억이 있다. 내용까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5만원 남짓 들어있던 저금통장의 비밀번호가 쓰여 있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중 략>
세 번의 ‘죽을 고비’와 두 번의 ‘유서’를 통해 죽음과 삶에 대처하는 방법을 조금 배웠다고는 하지만, “끊임없이 사라지고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삶의 매 순간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의 고민은 끝이 없는 것이다. 항상 새로워져만 가는 혼돈의 한 가운데에 ‘던져진 존재’로서 죽음이라는 종착점에 달려가야만 하는 과정인 삶은 어떻게 보면 매우 고달픈 것이고 허무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