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 첫째 권인 <서 있는 사람들>은 초판이 출간된 지 23년 만에 개정 작업을 거쳐 독자들에게 새롭게선보인다. <서 있는 사람들> <무소유> 등으로 문필활동을 시작한 법정 스님은 불교적 세계관에 뿌리내린 불교 본연의 가르침뿐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사물과 소재들에도 남다른 통찰...
지난 3월 법정 스님의 타계로 생전에 남긴 저서에 관한 관심이 크게 일었다. 생이 끝난 이후 자신의 모든 저서를 절판해 달라는 법정 스님의 유언과는 달리 <무소유>를 비롯해 각종 저서들에 대한 출판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비교적 덜 알려진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오래 전 헌 책방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있는 것을 보고, 좋은 말씀이 담긴 책이니 언젠가는 읽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별 생각 없이 사 두었던 책이다. 기승전결로 전개되는 소설이 아니라 주제가 하나하나 다른 수필이기에, 잠자리에 들기 전 스탠드를 켜고 조금씩 아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서 있는 사람들>은 스님이 40대일 때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전반적으로 가장 놀랐던 점은 1970년대에 쓰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 집필년도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마치 2000년대에 쓰인 글이라고 여겨진다는 것이다. 삶의 면면에 대한 스님의 통찰력이 30년이 넘는 시간을 초월해 읽는 이의 가슴과 머리를 동시에 울리게 한다.
‘서 있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출퇴근 시간의 복잡한 대중교통 수단 안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 묘사이기도 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서성이는 사람들, 즉 사회 전반적인 불평등 속에서 소외되어 가는 사람들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스님은 개인적 구도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과 사람에 대한 성찰을 밖으로 보여주고자 하신 분이라 느껴진다.
‘서울은 순대 속’이라는 글이 특히 그렇다. 1970년대 서울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을 스님이 느낀 대로 풀어내는데 마치 오늘의 서울을 보는 듯하다. 우리는 서울에서 살기 위해 몇 가지의 불편함들을 감수하고 있다. 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출퇴근 시간에 밀고 밀리는 사람들 덕에 콩나물 시루가 된 지하철이 그렇다. 인파에 밀려 사당역, 신도림역에서 환승 코스를 지나가다 보면 내가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이 길이 언제 끝날까, 이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까를 생각하면 힘들어지기에, 그저 사람들 속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