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불한당들의 세계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는 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그의 작품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독창적인 서술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문학과 철학, 역사, 신화 등의 요소를 결합하여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했다.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불한당들의 세계사>(1935)는 역사적으로 악명을 떨친 범죄자와 악당들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모음집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보르헤스 특유의 상상력과 문체를 통해 새롭게 재구성된 ‘픽션 속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본 리뷰에서는 <불한당들의 세계사>가 ① 역사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 ② 불한당(악당)이라는 주제의 철학적 의미, ③ 보르헤스의 독창적인 서술 기법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 책에는 <기타 등등>에 나오는 인물들까지 미국, 호주, 칠레, 중국, 일본 등의 전 세계를 대표하는 총 14명의 불한당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불한당이라는 주제 아래 여러 인물들의 사건을 보여주는 옴니버스 식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장밋빛 모퉁이의 남자’ 외에는 모두 패러디 한 작품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각 작품들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우선 읽고 난 느낌을 이야기 하자면 ‘특이하다’였다. 한 인물의 일생을 다루는 것보다는 이 인물이 얼마나 악독한 인물이었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들을 다룬다. 한 큰 제목아래 작은 제목들로 이루어져 사건의 연관성을 배제하고 중요했던 사건들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이를 작품 설명에서는 갱스터 소설 구조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간 중간 대개 있어야 할 연결고리는 생략되기 마련이고 ‘우리는 - 알고 있다.’라는 식으로 독자들까지 한 패로 끌어들여 전제를 주입시키기도 한다. 또 읽고 나서 굉장히 애매한 기분을 가지게 되었는데 인용과 역사적 사실의 언급, 실제적 시간 개념을 글 속에 포함시켜 이들이 정말 있었던 인물인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또 단정적인 어조와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문체는 순식간에 그의 소설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가장 혼란을 느꼈던 것은 굉장히 양자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므로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 이 14명의 불한당들을 만난 순서대로 글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잔혹한 구세주 라자루스 모렐
모렐이 왜 구세주인가? 노예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예해방하면 남북전쟁을 생각할 것이다. 또 이쯤에서 노예해방을 외쳤던 링컨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링컨은 선인인 반면 모렐은 불한당이다. 이 차이는 링컨은 흑인들의 인권보장을 위해 해방을 외쳤고 모렐은 탈주한 노예를 되팔아 이익금을 챙기고 그 대가로 해방을 실행 해준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