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봉건사회』는 이같은 사관이 가장 잘 반영된 그의 주저이다. 이 책은 블로크 특유의 문학적 서술방법을 굳이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할지라도 마치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나의 빼어난 대하소설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역사서이다. 그 융융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는 듯한 느낌을...
우선 최근 들어 읽었던 역사 관련 서적 중 가장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하면서도 가장 친근감 있고 또 쉬운 문체와 구성을 가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사료를 이용하여 당시의 사회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기술하여 크게 막히는 부분 없이 읽을 수 있었고, 당시의 유럽을 인간의 시대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중세(中世), 찬란했던 그리스·로마 시대의 철학, 문화, 군제(軍制), 법제(法制) 등의 유산을 잃어버린 암흑기(Dark ages)라고 부른다는 정도의 지식만을 가지고 있던 내게, 중세가 일정 부분 퇴보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중·후기에 접어들며 계몽기를 낳게 되는 씨앗을 인간의 힘으로 뿌린 긍정적 과도기의 측면도 있음을 알려주었다.
구체적으로는 다분히 원시적인, 보통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모습과 혼동하며 떠올렸던 군신의 관계와 비슷한 정도로 파악하고 있던 영주(領主)와 가신(家臣)의 관계가 생각보다 법률적이고 계약적인 관계로 변해가는 면모를 보이며, 이것이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관념인 토지의 사유화(私有化)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비록 처음에는 외부 세력에 의한 서유럽 통치체제의 붕괴로 무력을 보유한 가신의 영입을 통해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대가로서의 은대지(恩貸地)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노르만 바이킹의 침략을 끝으로 외세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된 서유럽에서 외세방어를 위한 무력의 집중이 일종의 잉여무력을 낳아 이 무력 집단, 즉 기사가 권력화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환경적 요인들이 작용하는 과정
마르크 블로크는 아날학파의 제1세대 학자로서 일부 지역과 단편적인 원인과 결과에 따른 협소한 역사가 아닌 전체적인 맥락에서 유럽의 통합적 역사를 서술하고자 했다. 그리고 인간을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통합된 존재이고 집단적 연관 속에서 파악될 수 있는 존재로서 사회 전체를 통해서 상당히 장기간에 걸친 시대 전체에 대한 탐구를 통해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역사서술의 방향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 <봉건사회>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봉건사회>를 통해 드러나 있는 블로크의 역사 서술의 특징과 역사관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