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토 히로부미를 통해 한일 근대사를 바라보다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의 뇌리 속에 야수의 얼굴을 한 제국주의의 상징이다. 안중근은 선, 이토 히로부미는 악이라는 도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각을 달리 해 보자. 일본인에게 이토 히로부미는 어떤 존재일까. 그는...
조선에서는 원흉으로 지탄받는 이토의 일대기를 본다는 것이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인물을 비평한다는 것은 공과 과를 모두 보는 것이라 하니 알아둘 필요는 있겠다.
먼저 어린 나이에 그것도 평민 출신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270여개 번 중에서 이토가 태어난 ‘장소’다. 그가 만약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현)이 아닌 다른 번에서 태어났더라면 출세가도를 달리지 못할 것이다. 노력을 뭉치는 입장에서는 근처에 있는 사람 중에서 골라쓸 수 밖에 없다. 일은 꾸미는 자의 로열티에서 출발하는 것이니 서푼 정도의 기량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다음이 그의 ‘기질’이다. 이토의 처세의 핵심은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물이 흐르는 대로 두지만 약간의 방향을 틀어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한다. 큰 틀은 두고 세세한 부분을 다듬는다고 해야 할까. 이토는 ‘주선가’로 자신의 역량을 정의하였다. 그래서 늘 ‘명랑’해야 했고 남을 ‘배려’해야 했다. 재물에 욕심이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어야 협동(컨소시엄)이 구성된다. 당신은 돈을 맡고 나는 명예를 맡겠다는 식의 업무 분장 말이다. 저자는 145쪽에서 이토의 처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토는 기도 사망 후 조슈파의 리더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 이노우에의 인사안을 더더욱 관철시키지 않으면 안 됐다. 이토는 결코 무리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일을 추진하다가 뭔가 장애가 생겨 풀리지 않으면 잠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상황을 두고 보는 식이었다>
뭔가를 주선하자면 쌍방에 모두 신의를 얻어야 한다. 믿기 싫은 내용이지만 이토의 주선가적 면모를 보여줄 수 있어 소개한다.
346쪽의 내용인데 태황제는 고종을 말한다.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쏘고 난 이후 고종의 말이다.
이날 태황제는 말했다. 이토를 잃음으로 동양의 인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