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세기에 출간된 플랫랜드는 20세기 물리학자들의 극찬을 받은 수학소설이다. 아인슈타인보다 앞선 시기에 4차원에 대한 정교한 상상을 제시한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는 물론이고 《네이처》, 《사이언스》와 같은 과학지와 그밖에 다양한 문학지에 많은 비평이 실렸다. 이 소설은 2차원 세계의...
플랫 랜드는 모든 것이 평평한 2차원의 세상이다. 1부 에서는 플랫랜드 사람들의 관습과 모습 그리고 규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플랫랜드의 특징은 서로를 구분하는 방법이였다. 2차원 세계의 플랫랜드에서는 다른 도형을 볼때 선분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방법 에는 세가지 방법이 있다. 첫 째는 발달된 청각이다. 이 방법은 목소리 만으로도 이웃을 구별할 뿐 만 아니라 다른 계급들도 구별할 수 있게 한다.
두 번째 방법은 가장 많이 쓰이는 느낌 이다. 느낌은 플랫 랜드의 여성들과 낮은 계급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인식 방법이다.
본 소설은 19세기 후반인 서구 사회 모더니즘의 한 복판에서 탄생하였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결국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 확신한 당시 사회에 소설 플랫랜드는 그야말로 서구 모더니즘의 고발처럼 여겨진다. 인식의 주체들이라 여겨지는 인간은 모든 것이 가능한 존재가 아니라 3차원에 갇혀있는 제한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런 인간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와 질서, 이상이라는 것들은 플랫랜드 사람들이 다각형과 원을 추구하는 것을 제일 가치로 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스페이스랜드를 경험한 정사각형에게 플랫랜드의 그러한 모습은 진실과 동떨어진 무의미하고 허무한 일들일 뿐이다.
비단 이러한 비판은 19세기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여전히 유용하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정보, 쉼 없이 발전하는 과학과 여러 학문에도 불구하고 과연 우리는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가 추구하는 더 나은 가치라던지 이상은 다 착각일 뿐이지 않을까? 이 흥미로운 소설을 읽으며 한편에서는 회의감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어찌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 3차원의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3차원의 감옥에 갇혀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도 생각해보게 된다. 이 세상을 분투하며 열심히 살아가며 무언가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은 3차원의 감옥에 갇힌 죄수요, 보다 긍정적으로 표현하여도 3차원의 놀이터에서 펼쳐지는 소꿉놀이에 다름은 아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실제 우리 삶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은 2차원의 평면에서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축구나 농구 경기 역시 2차원의 평면에서의 활동이요 여행을 하고 직장과 학교를 다니고, 산책을 하는 등 우리의 삶은 지표면이라는 평면, 즉 2차원에서 묶여 있는 듯도 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력 때문이다. 중력이 우리의 일상사를 2차원에 가둔 것이다. 더욱이 영화나 TV를 통해 보게 되는 화면 역시 2차원의 평면에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