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 시대 아버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홍부용의 소설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백수 아빠, 사업 말아먹고 집에서 놀고먹는다. 미용사로 가장 노릇을 하는 아내 눈치 보랴, 초등학생 딸아이 비위 맞추랴, 백수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아빠
그 이름 참 어색하고도 아련하고 외로운 이름이 있을까.
아빠는 외롭고 어렵고 어색하면서도 없으면 안되는 존재인 것 같다. 내 어린 시절 중요한 순간에 아빠는 항상 없었다.
돈 벌러 간다면서 지방으로 가버리셨고 엄마와 아빠는 일주일에 한번 씩 만나는 주말부부셨다. 가끔 집에 계시는 날에는 엄마와 머가 그렇게 싸울 일이 많은지 네버 엔딩 싸움으로 끝을 맺었다.
어느 날은 술을 엄청 마시고 기절한 아빠를 본 엄마가 119에 신고를 했다. 구급 대원들이 축 늘어진 아빠를 실고 병원으로 가는 모습이 또렷하게 기억에 난다. 돈 임금이 밀려 노동자 한명이 우리집에 뛰어 들어와 소리 지르고 거실에 대자로 누워 강짜를 부리며 아빠를 부르는 모습도 기억이 난다.
가끔씩 아빠는 술을 먹고 집에 온 날 기분 좋다면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돈 만원을 내 손에 쥐어주던 기억도 난다. 아빠 따라 가끔 일하는데 따라가기도 했다. 아빠는 삽질하고 벽돌을 옮기며 묵묵히 일한 후 어두운 저녁에는 같이 일하던 아저씨들과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쓴 소주와 함께 삼겹살을 먹던 기억. 가게 안을 자욱하게 맴돌던 담배연기가 눈앞에 그려진다.
지금 돌이켜보니 아빠는 네 식구를 책임지고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라 사회생활 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것 같다. 자식인 나와 감정을 교류하고 서로의 생각을 물어볼 만큼의 작은 여유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아빠와 함께 놀러갔던 기억들이 간간히 떠오른다. 손에 꼽을 만큼 세 네 번 정도 다른 기억들이 아련하게 내 마음에 살아있다. 아빠와의 추억이 별로 없다라는 사실이 참으로 서글펐다.
어느 날 20살 때 대학교에서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쓰라는 교수의 말에 나는 첫 번째로 쓴 글이 아빠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 였다.
20살 다 큰 어른이 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쓰라는 란에 그렇게 쓴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썼는데 쓰고 나니 내가 이렇게 아빠와 추억이 없었구나.... 깨달음과 이어서 든 생각은 아마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이다. 난 정말로 아빠가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