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민혜숙의 장편소설 『목욕하는 남자』. 사회생활, 사랑, 결혼, 꿈, 죽음 등을 소재로 한 이 작품집을 관통하는 가장 큰 모티프는 단연 삶이다.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불쌍하지도 않은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를 편안하고 세련되게 풀어나간다. 표제작인 《목욕하는 남자》는 쪼아대는 상무와 날로 더해가는...
자주 목욕탕에 가는 인물인 이 부장은 아침에 눈을 뜨면 자석에 끌리듯 집 근처 목욕탕을 향한다. 그는 항상 목욕탕에 앉아 사업을 구상하였다. 이른 아침 남탕에는 사람이 몇 되질 않았다. 우선 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그는 탕 안 깊숙이 몸을 담가 그날 하루 감당해야 할 일들을 생각한다.
이 부장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모두가 호상이라며 이 부장을 다독였다. 이 부장의 아버지는 췌장암에 걸린 지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더 고생하시기 전에 잘 가셨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이 부장의 아버지는 항상 모범생처럼 단정하고 공손하게 의사를 맞이했다. 다른 병실의 환자가 숨을 가두고 날카로운 통곡이 복도에서 들려도 이 부장의 아버지는 모르는 척 하며 열심히 항암치료에 전념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하루가 다르게 초췌해지면서 마른 씨앗처럼 비틀어졌다.
1. 목욕하는 남자
저는 책을 볼 때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하고 먼저 추측해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 제목을 보고 단순히 목욕을 자주 하는 남자이겠거니 하고 예상했고 어느 정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목욕탕에 매일 한번 씩 꼭 가는, 심지어 하루에 두 번도 가는 이 부장이 주요 인물이었습니다. 이 부장은 남들 앞에서 하지 못한 말들, 머릿속을 휘젓기만 하다가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을 목욕탕 안에서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 부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목욕탕에 갔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