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정치에 있어서 정조가 취했던 일련의 논리와 그의 정치에 대한 인식을 통해 정치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정조를 계몽 절대 군주 또는 학자 군주로서 알고 있다. 그러나 실록에 나타난 정조의 모습은 계몽 절대 군주이거나 진실한 선비의 전형이라기보다는 열세적인 세력 관계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뜻대로 행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국왕지지 세력조차도 당혹스러워 할 정도로 기만과 독단을 부리곤 했던 정치가였다. 즉 역사 속의 실천가였던 것이다. 유학에 있어서 권도와 경도가 있다. 경도는 일반적인 예나 법 규정을 그 내용으로 하며 권도는 위기시의 구체적인 행동규범인 것이다. 정조는 현실정치에서 대단히 논쟁적 주제이면서 정치가들이 특정 정치적 행위나 정책을 옹호하거나 비판할 때 사용했던 이론적 무기로서 권도론을 사용했다. 임금도 신하와 마찬가지로 삼강과 정치윤리인 구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신하들에게 정치세계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국왕의 폭넓은 통치권을 주장했고, 사도세자 문제와 토역의 의리에 휩쓸려 희생되는 종친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도 경도가 아닌 권도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