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로마제국의 유대 총독으로서 예수의 처형을 승낙해야만 했던 빌 라도의 입장에서 예수를 묘사한 소설.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문학의 유연성, 포괄성을 통해 예수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품이다. 저자는 범교양주의자 빌 라도의 눈을 통해 문화전통적, 사회적, 정치적 관점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그려낸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의 숨겨진 밑바닥에서 미처 조명 받지 못하고 있던,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보편적인 가치들인 ‘인간’과 ‘삶’이라는 주제를, 유명하면서도 늘 오해받던(적어도 이야기 속의 역할 상 어느 정도의 오해는 불가피했던) 한 등장인물의 행적에 비추어 소상히 그려낸 놀라운 정보력과 문학적 상상력이 여기에 있었다. 정찬의 장편소설 「빌라도의 예수」는 대략 두 가지 정도의 측면에서 나에게 말 그대로 신선한 모종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먼저 이 책은 설정된 주제와 내용 자체가 나의 신앙과 성경에 관한 배경 지식에 대한 도전이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신앙을 가지고 자란 나에게 성경과 예수의 이야기는 감히 파헤쳐보지 못할 높고 경이로운 이야기임은 물론, 고민과 탐구의 빛을 보지 못한 채 내 안에 일종의 고정관념처럼 굳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 관념 안의 예수는 ‘인간’의 모습도, ‘삶’의 모습도 잘 그려지지 않는 이상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그러한 예수를 못 박은 빌라도(늘 버릇처럼 외우는 사도신경 속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악역)라는 사람은 당연히 ‘나쁜’사람으로, 좀 자라면서는 그나마 ‘어리석은’ 사람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이러한 나의 생각들을 하나씩 삶의 자리로 돌려놓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