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_『비 오는 길』
시대를 앞섰던 모더니스트 최명익의 대표 단편 8편 수록했다. 병과 죽음으로 고통받는 인물 군상들을 통해 자신이 예감한 황폐한 현대의 징후를 소설화한 작가 최명익. 너무나 현대적이어서, 당시에는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었던 탁월한 단편소설들을 만나볼 수 있다.
줄거리
병일은 성 밖에 있는 공장에 사환 겸 사서로 근무하고 있으며 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집에서 옛 성문 안을 가로질러 공장에 이르는 길을 왕복한다. 어느 날 그는 비를 피하기 위해 사진관 앞에 서 있다가 사진관 주인을 만나게 된다.
가장 인상 깊은 구절
술을 따라서 잔을 건네면 이 술추렴에 한몫 드는 셈이 되겠는고로 빈 잔을 놓은 것이었다.
감 상
1)이 책에서 말하는 작가의 의도: 이 작품은 사색적 인물인 병일의 자의식에 천착하여 지식인의 고독과 허무를 다룬 작품이다.
2)책을 읽으며 느꼈던 점::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느꼈던 점은 일제 강점기의 시대로 자신의 자유로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지식인 기술의 발달로 사진을 쉽게 복제하는 사진사의 대비를 통해서 쉽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자신의 생활 수단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지식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창작의 부재로 보였고 창작이라는 것에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성찰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3)이 작품의 특징:
⚫병일의 심리와 의식을 집중적으로 서술하여 그 당시의 지식인의 고독과 허무감을 잘 드러냄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마치 1인칭 주인공 시점과 같이 표현함
⚫자의식에 매몰된 지식인과 속물적인 사진사의 대비를 통해 주제를 드러내고 있음
1936년에 발표된 최명익의 단편. 실은 국어교사가 되고자 문학을 공부하고 있으면서도, 최명익이라는 작가에 대하여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해방 후 사회주의문학을 이룩하는 것에 한 몫 했다’는 정도는 어디에선가 읽었던 것도 같았지만, 자세히 아는 바가 없어 최명익의 소설을 읽게 된 것은 <비 오는 길>이 처음이었다.
<비 오는 길>은 하루하루 공장을 오가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을 살던 ‘병일(丙一)’―병(丙) 자가 남녘이나, 이름에 쓰일 때는 주로 사물 등급 중 셋째라는 뜻이던데 왜 한 일(一) 자랑 합쳐서 이름을 지었을까, 궁금하다―이, 일상적인 삶―돈을 벌고, 아이를 키우는―을 추구하는 사진관 주인 ‘이칠성’을 만나면서 하게 되는 생각이나, 태도의 변화 같은 것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래서 읽으면서 당연히 소설 속 배경보다는 인물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 살기 위해 이리저리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속에서, 주인공 병일은 고독한 삶을 혼자 견디어 간다. 병일에게는 ‘언젠가의 꿈’이나 ‘앞으로의 희망’같은 유채색의 세상은 없다. 무언가 지향하는 목적 없이, 살아가려면 일을 해야 하기에 일을 한다. 매일같이 길을 엇갈려 지나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은 언제까지나 자신에게 ‘노방(路傍)의 타인’이라고 칭하고―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는 반면에 ̄, 그저 자신만의 흑백 세상, 깜깜한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병일이가 하나 놓지 않는 것이 있다면, 왜인지는 몰라도 ‘독서’다. 병일은 월급을 받으면 그것을 저금하지 않고 책을 산다.―책을 구입하는 것을 저금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白痴)』도 읽는다. 당대 지식인들의 행보를 따라가려했던 것일까. 공장과 하숙을 오가는 삶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노동자의 삶을 나타내는데, 그가 오가는 길목, 혹은 책을 읽고 잠든 밤에서 그의 삶은 지나치게 관념적인 것이다. 이러한 병일과는 정반대의 지향점을 가진 사람이 이칠성이다. 이칠성은 병일이가 다니는 한 길목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공준생’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준말이다. 지난해에는 무려 25만 7천여 명의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과연 ‘공시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하다. 이렇게 많은 청년이 ‘공준생’이 되는 까닭은 공무원이 고용과 임금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꿈보다 생존을 좇는 청년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것이 삶에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불현듯 소설 <비 오는 길>의 주인공 ‘병일’ 역시 이 시대의 공준생들처럼 꿈보다 생존이 더 급했던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일의 직업 때문이었다. 그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도스토옙스키나 니체의 책을 읽는 지식인이었다. 그런 그가 ‘사무실 마루를 쓸고, 훔치고, 손님에게 차와 점심 그릇을 나르고, 수십장의 편지를 쓰고, 장부를 정리하는 등 소사와 급사와 서사의 일을 한 몸으로 치르’는 잡부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