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음식을 통해 이 시대의 결핍을 이야기하는 장은진의 작품들!
장은진 소설집『키친 실험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신예 소설가 장은진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장은진 소설의 키워드는 식욕과 음식이며 이것은 빈곤, 결핍, 소통이라는 테마와 공명한다. 작가는 이런 테마들을 형상화하기...
1. 아내가 나간다.
첫 문장이 짧게 마음을 치고 지나간다. “아내가 들어온다.”도 아니고 “아내가 웃는다”도 아니다, 그저 “아내가 나간다”뿐이다. 대문으로 나가는지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걸어나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첫문장이 왜 이렇게 차갑고 시린가. 나름 소설읽는 눈치로 작가가 뿌린 이른바 “떡밥”같은 복선을 더듬으며 이미 비극을 예감한다. 모지락 스럽게 대문을 철커덕 닫아걸고 등돌리는 여자. 표독스런 표정을 하고 긴머리나 정단발을 한,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나오는 못되처먹은 성정을 가진 어느집 딸래미가 떠오른다. 더불어 집안에서 철대문에 빗장을 지르는 아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무능하고 심약한 남자의 모습도 생각났다.
2.시커먼 들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남자는 주기적으로 소년에게 실험재료들을 구입한다. 그가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은 비커,삼발이,알코올램프같은 것이 아닌 숨이 끊어져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혐오스럽다고 느껴질만한 “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