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다른 여러 시대에는 각기 다른 매체의 특성 때문에 메시지를 전하는 새로운 방법,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존재 양식,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전해졌다. 계속적이고 전면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와 그리스도 자신은 전달되지 않는다(25-26).
1. 구전문화에서의 신앙전달(침잠을 통해 얻는 신앙)
아직도 아프리카의 몇 나라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지식과 전통적인 지혜와 인생의 법칙이 구두를 통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고 발전된다. 이렇게 입으로 전달되는 지식에는 감정이 합해지며, 메시지는 전달자의 성격이나 사회적인 영향을 받아 크게 바뀔 수 있고, 지식을 전하려면 사람들이 한군데 모여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구전문화의 전성기에 교리교육이 생겨났고, 세 가지 형태의 활동 ① 복음화, ② 예비자 교리교육, ③ 침잠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것들은 전례와 실행, 이야기와 이미지, 가르치는 사람의 신성적 역할 등을 통해 공동생활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침잠(immersion)을 통해 신앙을 얻는 방법은 중세의 그리스도교 때 절정을 이루었다. 침잠을 통한 교리 교육은 기도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가를 통해서 그리고 집전하는 사제의 인도 하에 성당에서 맡은 역할을 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다. 교인들에게 순례를 가도록, 또 독실하도록 격려했다. 이것은 시청각 세계에도 적용되는 것은 이해하려면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말로, 중요한 것은 함께 속하는 것이고, 공동체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이고 그 사회 구조에 접목되는 것이다. ‘종교에 목욕하는’이라는 상황에서 중요한 교리 교육 장소와 순간은 교회의 축일 때이고, 전례에 참여하는 것이 중심적인 것이었다.
침잠을 통한 교리교육은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하면서, 암기하기 위해 숫자의 상징과 몸짓을 지나칠 정도로 사용했다.
Ⅰ. 시작하는 말
나는 늘 젊은이들에게 마음이 끌린다.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그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기술을 전파하면서 나는 젊은이들 안에 숨겨진 씨앗에 들어 있는 놀라운 잠재력을 보고는 힘을 얻고 영감을 받았다. 나는 이들을 교육하면서 복음의 상징들에 대한 힘을 깨닫기 시작했고 신앙의 상징적인 길을 발견했다. 종교 교육의 열쇠는 신앙으로 이끄는 최초의 단계에서부터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체험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때 시청각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시청각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이해력과 인품의 전혀 다른 측면이 나타나게 하는 전혀 다른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시청각 지향적인 인간이 태어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더 이상 우리가 과거에 대해 말해 왔듯이 말할 수는 없다. 교회의 교육과 사목방법이 바뀌어야한다. 우리가 젊은 세대를 대할 때 염두에 둘 점이 세 가지 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즉 상상력을 되찾고, 감성적인 관계와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국가적, 문화적 국경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글을 전개하면서 특별히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우리 시대의 현실을 더욱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시야를 제한하는 원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 활자 중심의 우주라는 원을 박차고 나오지 않고서는 전자 매체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집”(창 12:1)을 떠나지 않고는 전자 시대에 문화간의 진정한 상호전달을 할 수 없다.
종교 커뮤니케이션의 새 시대를 연 것은 활자 인쇄가 가능하게 된 중세시대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일어났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들을 인쇄기술의 발달로 교리화 시키고 그것을 보급함으로서 복음의 확신과 확산을 일으켰다.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새로운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시대가 열렸다. 더 이상 활자만으로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장소나 시간 그리고 언어의 장벽까지도 없어져 버린 작금의 때에 복음을, 그리스도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더 이상 종이 위에 쓰인 활자로서만이 아니라 노트북이나 전자책으로 모든 정보를 탐색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예수님의 복음이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유혹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유혹’이라는 단어에 나는 심한 알러지 반응을 일으켰고,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처음 이 책을 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