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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정치2024.10.201. 정조의 정치와 개혁정책 1.1. 시대적 배경 정조는 영조시대가 남긴 정치적 유산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국왕의 입지를 바로 세우는 것,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는 것, 무너진 관료제의 기강을 잡는 것, 군령체계를 바로 하는 것 등이 모두 정조가 당면한 과제였다. 그렇기에 정조는 국왕 중심의 정치를 회복하여 정치적 과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다. 정조의 정치 과제의 배경 속에는, 영조시대의 대표적 후유증이라고 볼 수 있는 '사도세자 사건(1762년)'이 있다. 사도세자가 부왕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이 사건...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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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의 전개와 변질2024.10.121. 조선 후기 정치구조와 사회 변화 1.1. 붕당정치와 정치적 갈등 조선 중기 이래 격렬하게 전개된 붕당정치는 조선 후기 정치구조의 핵심을 이루었다. 붕당정치는 조선 시대 정치 세력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크게 동서 양당으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붕당정치의 시작은 선조대 심의겸과 김효원의 이조전랑 추천 문제로부터 비롯되었다. 이후 조정의 인사들이 서인(西人)과 동인(東人)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고, 이는 재야 유생들까지 어느 한쪽을 지지하게 되는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동서분당 이후 붕당은 지속적으로 분열을 일으켜 남인(南人)·북...202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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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2024.11.181. 조선시대 승정원일기의 작성과 관리 1.1. 승정원의 설치와 구성 조선 태조 원년(1392) 7월, 국가의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기구로 승정원이 설치되었다. 당시 고려의 제도를 이어받아 중추원의 하부에 있던 승지방이 독립하여 승정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태종 대에 정권을 장악하면서 중추원의 기능을 축소시키고 승지방을 승정원으로 독립시켰다. 이에 따라 승정원은 왕명 출납을 전담하는 기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승정원은 도승지, 좌승지, 우승지, 좌부승지, 우부승지, 동부승지 등 정3품 당상관 6인의 승지가 있었다...20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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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한국사2024.11.091. 한국사 인물의 재평가 1.1. 의자왕 재평가 1.1.1. 의자왕 선정 이유 의자왕을 재평가되어야 하는 인물로 선정한 이유는 의자왕의 시대에 고구려와 여제동맹을 결성하여 신라를 거세게 밀어붙였고,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가 아닌 귀족 중심 사회였던 백제에서 왕권을 강화하려고 힘썼기 때문이다. 물론 말년에 초반과 다른 인물이 되어 망국의 군주가 되었기도 하지만 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망국의 군주였던 의자왕에 대한 기록이 안 좋게 기록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저자에게는 흥미로워서 의자왕에 대해 다시 알아보고 평가하...202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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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재해석2024.11.021. 의자왕의 생애와 재평가 1.1. 의자왕의 생애 및 즉위 과정 의자왕(義慈王)은 삼국시대 백제의 31대 왕이자 마지막 국왕이다. 무왕의 첫째 아들로 641년 무왕이 돌아가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며, 재위 기간은 641년부터 660년으로 나당연합군에 패할 때까지 백제를 통치하였다. 무왕(武王)은 재위 기간 내내 왕권 강화에 힘써 무왕이 닦아놓은 체제 기반으로 의자왕을 태자로 책봉하였다. 그가 태자에 책봉되었을 나이가 30여 세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늦은 나이에도 태자에 책봉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장자라...20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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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주요사건2024.09.031. 백제사 개관 1.1. 서론 백제사는 고구려와 신라와 비교하여 남아있는 사료가 많지 않다. 그렇기에 많은 부분을 추측과 주변 국가들의 기록과 비교하여 확인 할 수밖에 없다. 이번 과제를 통하여서 백제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백제에 정치구조와 그 변화에 따라 알아보고자 한다. 백제는 삼국사기에 동명왕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가 한강유역에 자리를 잡고 주변 세력을 병합하면서 건국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들이 건국한 백제라는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정 국가의 정치구조를 이해함으로써 그 사회의 공시적인 특징은 물론 그러한 구조가 ...202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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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 한국사2024.09.091. 광해군의 평가와 재평가 1.1. 상반된 평가를 가지고 있는 왕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왕이자 인조반정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국왕이다. 그는 연산군과 더불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이후 '조(調)'나 '종(宗)' 등의 칭호가 주어지지 않은 왕이기도 하다.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우선 그가 이른바 인조반정을 통해 폐위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난정을 일삼다가 폐위된 폭군'이자 '혼주(昏主)'로 보는 전통적 인식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광해군을 '명청교체(明淸交替)라는 격변 속에서 이른바 '택민주의'에...2024.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