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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말여초부터 여말선초까지 시대별로 한문산문의 특징을 개괄하면서 각 시대 문단을 주도한 문인들(예를 들어 조선 전기의 관각파, 사림파, 방외인 등)의 성격과 그들이 남긴 한문산문 작품을 정리하시오2024.09.291. 서론 우리나라의 전통 인문학인 한학은 상고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국의 운서나 자서, 유서를 수용하면서 한국 실정에 맞게 재편하거나 관련 서적을 신찬했다. 문헌의 교감이나 주석의 집성, 새로운 주석의 편찬과 같은 문헌정리방식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전에는 이두를 활용해 한문 문헌을 작해하는 작업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졌고, 훈민정음 창제 이후로 한문 문헌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언해 작업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조선전기에 훈민정음이 창제된 것은 언어학사적인 사건이며 당시 한학기초학의 성과를 집성하고 반영한다...202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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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사대부의 등장2024.11.181. 여말 선초의 신진사대부 1.1. 신진사대부의 등장과 분화 고려 후기 개혁정치의 추진은 아직 중앙 정계에 확고한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지 못한 신흥관료(新興官僚)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향리(鄕吏)출신을 비롯한 한미한 가문출신 관료들이 개혁세력이 되어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신장시키고 있었다. 이들은 세족(勢族)출신 사대부와는 달리 아직 문벌화(門閥化)하지 않은 가문배경의 소유자였으며, 특히 유교적 소양을 바탕으로 현실 비판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을 사대부 층의 한 갈...20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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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2024.11.041. 위화도 회군의 배경과 의의 1.1. 고려말 원 및 명과의 관계 고려말 원 및 명과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였다. 공민왕 시대에는 친원정책을 버리고 반원정책을 펼치면서 자주성을 확립하고자 하였으나, 공민왕의 사망 이후 강화된 보수 세력에 의해 친원정책이 다시 추구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고려와 명나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공민왕은 즉위와 동시에 고려가 자주국가임을 강력히 천명하며 반원정책을 펼쳤다. 원나라에 휘둘리던 고려의 내정을 장악하기 위해 원나라 세력인 기철, 권겸, 노책 등을 숙청하고, 원나...2024.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