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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그 마지막10년2024.09.221. 정조의 생애와 업적 1.1. 정조의 생애 정조는 조선의 제22대 군주로, 고종시기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이다. 그의 아버지는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이고, 어머니는 혜경궁 홍씨, 할아버지는 영조이다. 비극적인 가정사를 가지고 왕이 되었지만, 할아버지 영조와 함께 조선 최후의 부흥기를 이끈 임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일반적이지 않은 스토리와 조선 최후의 개혁군주로 평가 받는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많은 대중매체의 주목을 받는 왕이기도 하다. 1776년에 즉위하여 1800년에 사망한다.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비정한 정치판에...202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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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2024.10.201. 사도세자 -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조선 왕실의 비극적 인물 1.1. 출생(1735년 2월 13일) 사도세자의 본명은 '이선'이며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 사이에서 1735년 2월 13일에 태어났다. 또한,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이었다. 영조의 첫째 아들은 '영조'와 '정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효장세자'인데 10살이 되는 해에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영조가 41살에 늦둥이로 낳은 자식이 바로 '사도세자'인 것이다"이다. 1.2. 어린시절 영조는 어렵게 얻은 늦둥이의 탄생을 너무나도 기뻐했다. 그래서 ...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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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죽음2024.10.201. 서론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학창시절부터 간간이 들어왔었다. 세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다는 것이 내가 이때까지 들어온 이야기의 큰 틀이었는데, 올해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를 통해 사도세자 이야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 나오는 권력과 인간이라는 책에 대해 찾아 읽어보던 중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해 크게 사도세자의 광증설과 당쟁희생설이 대립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대립하는 두 주장에 대해 알아보았다. 세자는 미치지 않았고 오히려...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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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정조의 업적이 다른 이유2024.10.201. 우리 역사에서 존경받는 인물: 정조 1.1. 정조의 생애 정조는 조선의 제22대 임금으로, 영조 시대에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왕세손으로 책봉되어, 국왕에 오르기까지 전형적인 제왕학을 통한 리더십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할아버지였던 영조는 신하에게 교육을 받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국왕 자체가 직접 학문을 연마하고 또 신하들을 가르치려 한 국왕이었기 때문에 사도세자나 어린 왕세손이었던 정조에게도 끊임없는 교육을 시켰고, 여러 경연 자리에 정조를 불러 신하들과 적극적으로 토론을 하도록 하였다...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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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이야기2024.10.101.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해석 1.1. 궁예에 대한 재평가 현대에 들어서면서 미디어에 등장하는 신조어로 인해 궁예에 대한 편견적 사고가 생기게 되었다. '궁예질'이라는 신조어가 다른 사람이나 유명인의 속내를 지레짐작해 근거 없이 추측하고 판단하는 행위를 비꼬는 용도로 사용되면서, 궁예의 이미지 또한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이에 새로운 관점에서 궁예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 인물에 대한 평가가 통일되지 않고 한쪽으로 편향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성기의 궁예는 왕건보다 강한 권력을 가졌음...202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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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에대해 승정원일기는 어떻게 기록되었는지2024.11.201. 서론 1.1. 사도세자 연구의 배경 사도세자 연구의 배경은 그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관심과 의혹에서 비롯된다. 영화 '사도'의 개봉을 계기로 사도세자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졌는데, 특히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서로 상반된 주장들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과 인간이라는 책에서 제기된 사도세자의 광증설과 당쟁희생설은 그동안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주요한 해석이었다. 광증설은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근거로 하는데, 이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영조의 가혹한 교육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광증에 걸렸고,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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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건릉2024.11.201. 수원·화성지역 답사 1.1. 성곽의 도시 수원·화성 개관 조선 제22대 왕 정조는 부친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수원을 근대 도시로 건설하였다. 수원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정조는 이곳이 "우리나라의 우부풍(右扶風)의 땅"이라고 평가하였다. 즉, 바다를 등지고 한강을 앞에 두어 서울을 감싸고 있으며, 영남과 호남을 아우를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라는 것이다. 정조는 수원을 신도시로 건설하면서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고 이를 "현륭원"이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이 현륭원을 보호...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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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교 한국사2024.11.231. 광해군 재평가 1.1. 서론 1.1.1. 상반된 평가를 가지고 있는 왕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왕이자 인조반정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국왕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우선 그가 이른바 인조반정을 통해 폐위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난정을 일삼다가 폐위된 폭군'이자 '혼주(昏主)'로 보는 전통적 인식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광해군을 '명청교체(明淸交替)라는 격변 속에서 이른바 '택민주의'에 입각하여 현명한 외교를 펼쳤지만 결국 당쟁에 희생된 군주'로 보는 긍정적인 시각이 있다. 또한 광해군의 공과(...2024.11.23